<목회일지> “믿음은 곧 사귐이라.”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열며 이 단순한 진실을 다시 우리 앞에 세워줍니다. 그는 당시 공동체를 흔들던 영지주의, 신비주의, 왜곡된 가르침 속에서 무엇이 진짜 믿음의 본질인지 다시 붙잡도록 성도들을 이끌었습니다. 요한이 전한 결론은 놀랍도록 담백합니다. 믿음이란 어떤 비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사귀는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 신앙은 ‘개념’이나 ‘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과의 만남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다양한 영적 정보 속을 헤맵니다. 내 안의 신성을 찾으라는 뉴에이지, 데이터와 아바타가 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디지털 시대의 영성, “내가 느끼는 게 진리”라는 자기중심적 감각의 시대. 이런 흐름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그러나 요한은 우리를 다시 현실로 돌려세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실제로 듣고, 보고, 만지는 삶이 믿음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를 전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 가까이 지내는 일입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삶이 돌이켜지고, 공동체를 향한 시선이 열리는 일입니다. 빛 가운데 나아와 감추었던 것들을 조금씩 내어놓는 용기입니다. 어느 기독교 철학자는 공동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공동체란 사람들이 자기중심의 그늘에서 빠져나와 참된 사랑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장소이다.” 우리는 완벽한 공동체를 찾는 것으로 빛 가운데 걷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공동체 안으로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서로를 품고 일치를 이루려는 발걸음이 빛 가운데 행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어둠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사귐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그리고 이웃과의 사귐. 그 사귐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화합니다. 우리 인생은 ‘나들이 여행’과 같습니다. 그 여행의 목적은 하나님을 보는 것, 그리고 그분을 좇아 내 존재가 커지는 겁니다. 작은 내가 터져야 꽃이 피듯, 우리 안의 고집과 두려움이 깨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사귀는 존재로 자랍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좇아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향한 따뜻한 사귐이 더 풍성하게 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