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일지> 신발 Down, 시간 Flow(출애굽기 3:1–10)  
 인생에는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는 계절이 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관계는 모래처럼 새어 나가고,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흐려지는 때. 모세에게 그 계절은 광야의 서쪽, 호렙 산 자락이었습니다. 남의 양을 몰며 스스로를 가시떨기처럼 보던 날, 꺼지지 않는 불빛 앞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음성을 듣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 순간 하나님은 말합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 땅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나의 권리를 내려놓고, 사회적 가면과 방어를 풀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겠다는 결심입니다. 인문학의 언어로 말하면, 페르소나를 잠시 벗고 본모습으로 숨 쉬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크로노스(흘러가는 시간)와 하나님의 카이로스(때)를 구분합니다. 상처와 분노, 두려움은 우리의 시간을 어긋나게 하지만, 신을 벗는 겸손은 하나님의 때에 다시 맞추는 행위입니다. 호렙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보았고, 들었고, 알았다… 그리고 보낸다.”(3:7~10) 보심과 들으심, 아심이 사명으로 흐르는 순서입니다. 그러니 거룩은 먼 성지에서만 피어나는 꽃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 낮아진 자리, 반복되는 노동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을 벗어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멈춘 시간이 흐를 때, 고인 마음은 강이 되어 이웃에게 흘러갑니다. 이번 한 주, 잠들기 전 60초의 짧은 기도를 함께 실천해 보세요. “주님, 오늘 벗습니다: (분노/두려움/가면/집착 중 하나를 적어 보세요). 제 시간을 주님의 때에 맞춥니다.” 신을 벗는 곳에, 시간이 흐릅니다.    시간이 흐르는 곳에, 사명이 섭니다. 그 발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보시고–들으시고–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시다. 오늘 우리의 자리도, 그분이 계시기에 거룩한 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