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일지> 우리는 방주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아담이 하와를 처음 만났을 때 남긴 고백을 통해 이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는 단순히 이름을 붙이지 않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노래합니다. 인간은 ‘너’를 만날 때 비로소 ‘나’가 되는 존재입니다.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을 “나-너 관계” 속에서 이해했고, 또 다른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 앞에서 우리는 책임을 느끼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성경의 인간 이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다움은 능력이나 성취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응답과 책임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죄는 이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책임 전가의 언어로 바뀌었고, 공동체는 경쟁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역시 이 단절을 강화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삶, 타인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삶은 죄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하나님은 방주를 준비하십니다. 방주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며, 새로운 세계의 모델입니다. 방주 안에는 강한 것과 약한 것, 크고 작은 존재들이 함께 공존합니다. 경쟁이 아닌 공존, 배제가 아닌 보존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어디에 속해 있는가”입니다. 같은 폭풍 속에서도 방주 안에 있는 자는 살고, 밖에 있는 자는 무너집니다. 구원은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방주는 준비된 자에게 열립니다. 홍수는 갑자기 왔지만, 방주는 오랜 시간 순종으로 지어진 결과였습니다.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순종 속에서 형성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말씀하십니다. “방주를 지어라.” 이 명령은 거대한 건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삶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외로운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 경쟁 대신 공존을 선택하는 것—이 모든 작은 행위가 오늘 우리가 짓는 방주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 방주입니다. 서로에게 “네가 있어서 기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공동체, 그 안에서 사람은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는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방주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방주는 거창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으로 엮인 공동체입니다. 오늘도 묻습니다. 나는 경쟁하는 사람인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가. 나는 누군가를 지나치는가, 아니면 이웃이 되어주는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통해 세상을 다시 시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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