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일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가난에는 상대적 가난과 절대적 가난 두 종류의 가난이 있습니다. 상대적 가난은 헬라어 “페레스” 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남들보다 가난 한 것입니다. 즉, 남들보다 눈에 보이는 소유함이 없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합니다. 소설 미디어가 발달 할수록 요즈음 세대에 정말 안타까운 것은 점점 남에게 보여 주는 세상에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이 또는 환경이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상대와 비교 할 때 가진 것이 없는 듯한 마음이 들면 육체적인 가난 뿐 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가난 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가난함을 견디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절대적 가난은 헬라어 “프로코스” 라고 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수 없는 가난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난은 절대적인 가난입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특히 심령이 가난 하다는 것은 영적 빈곤, 영적 거지 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우리의 영 이 가난 해서 주님 아니면 살수가 없다고 부르짖으며, 주님 만이 나의 도움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정말 심령이 절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타인과 나를 비교할 여유도 없습니다. 즉, 타인이 환경이 나의 행복을 결정 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오직 하나님께 만 도움을 구하고 부르짖는 자 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필요하고 다른 것도 필요해요 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심령이 가난 해서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겸손의 태도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크리스찬, 나이스한 그리스찬은 삶이 어려운데 괜찮다고 주님이 도와주실것 이라는 믿음이 있는척 하는 사람들 입니다. 안 괜찮은데 괜찮은척 하고 부르짖지 아니하는 것은 나이스한 믿음이 좋은 크리스찬 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이 좋은척 해 보이는 교만함 이기 떄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심령이 가난해 져서 주님의 은혜 와 긍휼이 없이는 살수 없음을 부르짖는 겸손함을 갖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천국이 저희의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기 떄문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