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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025.05.18 기댈 곳, 단 하나(하박국 3:8–19)2025-09-18 23:29
Name Level 10

<목회 일지>  기댈 , 하나(하박국 3:819)

목사님,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으로 살고 싶어요.그런데요… 자꾸 뒤에 ‘그런데요’를 붙이게 돼요.

얼마 , 청년이 제게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하나님 분이면 충분하다는 믿음 안에 살고 싶지만, 고백 뒤에 조용히 따라붙는 말—‘그런데요’—를 어떻게 하면 떼어낼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물음은 단순히 신앙의 언어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깊은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경제적 안정, 사람들의 인정, 마음을 기대어 어깨 하나…이 모든 것이 필요 없다고 말할 있을까요?

그래서 때로 우리의 고백은 이렇게 이어집니다.“하나님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싶어요. 그런데요…” 고백은 불신이 아닙니다.오히려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의 정직한 탄식입니다.진실로 믿고 싶기에,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그는 바벨론의 위협 앞에 남유다의 현실을 직면하며 외쳤습니다.“하나님이 정말 땅의 왕이시라면, 세상이 모양입니까?”그는 눈을 감거나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묻고, 씨름했습니다.그의 이름처럼—“끌어안다”, “씨름하다”—하박국은 고통을 안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물음에 기울이셨다는 것입니다.하박국은 전통적인 예언자의 모습이 아닙니다.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 질문하며 변론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의 말투도, 마음도 어딘가 우리를 닮았습니다.“하나님,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하나님, 정말 주님만으로 충분한가요?

그리고 하나님은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그런데요…”라는 말끝에 숨겨진 두려움과 상처, 갈급함과 갈망—그 모든 것을 안고서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그분은 꼰대가 아닙니다. 침묵하지 않으시고, 정직하게 묻는 자와 끝까지 대화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향해, 하박국은 마침내 고백합니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하박국 3:1718).

신앙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 문제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드는 일입니다.‘그런데요’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선택,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망설이듯 말합니다.“하나님이면 충분하다고 믿고 싶어요… 그런데요…”그러나 ‘그런데요’조차 안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고백은 이미 믿음의 씨름이며, 은혜의 위에 놓인 발자국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정직하게, 천천히, 깊이 씨름하며,그분만이 나의 기댈 곳임을 다시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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