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일지>  기댈 곳, 단 하나(하박국 3:8–19) “목사님,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으로 살고 싶어요.그런데요… 자꾸 그 뒤에 ‘그런데요’를 붙이게 돼요.” 얼마 전, 한 청년이 제게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믿음 안에 살고 싶지만, 그 고백 뒤에 늘 조용히 따라붙는 말—‘그런데요’—를 어떻게 하면 떼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물음은 단순히 신앙의 언어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의 깊은 긴장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경제적 안정, 사람들의 인정, 마음을 기대어 쉴 어깨 하나…이 모든 것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때로 우리의 고백은 이렇게 이어집니다.“하나님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싶어요. 그런데요…” 이 고백은 불신이 아닙니다.오히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정직한 탄식입니다.진실로 믿고 싶기에,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습니다.그는 바벨론의 위협 앞에 선 남유다의 현실을 직면하며 외쳤습니다.“하나님이 정말 온 땅의 왕이시라면, 왜 세상이 이 모양입니까?”그는 눈을 감거나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묻고, 씨름했습니다.그의 이름처럼—“끌어안다”, “씨름하다”—하박국은 고통을 안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그 물음에 귀 기울이셨다는 것입니다.하박국은 전통적인 예언자의 모습이 아닙니다.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 질문하며 변론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의 말투도, 마음도 어딘가 우리를 닮았습니다.“하나님,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하나님, 정말 주님만으로 충분한가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그런데요…”라는 말끝에 숨겨진 두려움과 상처, 갈급함과 갈망—그 모든 것을 안고서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그분은 꼰대가 아닙니다. 침묵하지 않으시고, 정직하게 묻는 자와 끝까지 대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향해, 하박국은 마침내 고백합니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하박국 3:17–18). 신앙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 문제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드는 일입니다.‘그런데요’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선택,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망설이듯 말합니다.“하나님이면 충분하다고 믿고 싶어요… 그런데요…”그러나 그 ‘그런데요’조차 안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면,그 고백은 이미 믿음의 씨름이며, 은혜의 길 위에 놓인 발자국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 앞에서정직하게, 천천히, 깊이 씨름하며,그분만이 나의 기댈 곳임을 다시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