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일지> Homo Viator ― 길 위에 있는 사람 설명절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인사에는 흥미로운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복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는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세요”가 아니라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합니다. 복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근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처음 말하는 복도 그렇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먼저 생명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물고기와 새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복은 단순한 번영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이어가고 확장하는 권위의 위임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안식일’이라는 시간까지 복되게 하셨습니다. 복은 생산성의 증가가 아니라, 생명이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 이후 복은 왜곡됩니다. 다스림은 폭력이 되고, 번성은 고통을 동반하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자기 이름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아브람입니다. “너는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부르심은 단순한 이주 명령이 아닙니다. 존재의 방향 전환입니다. 익숙함과 안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미래를 향해 걸어가라는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완성된 결과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 안에 복을 담아 두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첫째, 그것은 우리를 어른 되게 하는 복입니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복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존재로 자라게 하는 복입니다. 둘째,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되는 복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번영도 결국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이어진 열매였습니다. 특정 인물을 우상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성취는 약속의 성취일 뿐입니다. 셋째, 그 복은 우리를 ‘복의 통로’로 부르십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을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Homo Viator,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 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아브람의 떠남도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이어지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가다’는 단어에는 지속적인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통해 창조의 복이 다시 흐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복은 성공이나 소유가 아니라, 참 인간이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라고, 어디로 가든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익숙함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약속을 따라 걸어갈 것인가. 복은 길 위에서 경험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 |